“성장”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설레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 성장이 한쪽으로만 몰릴 땐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최근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서면서, 다시금 ‘균형발전’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더 커지고, 지방은 더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 물음이 지금 이 순간, 조용히 지방 곳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서울은 앞서 달리는데, 지방은 아직 신발도 못 신었다
서울은 요즘 말 그대로 빛이 납니다. 로봇, 바이오, 반도체, AI... 눈부신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죠.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일부 풀어, 기업들이 더 쉽게 자리 잡고,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이 따라붙습니다.
물론,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얘기를 지방에서 들으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충청이나 경북, 전남에 사는 분들은 “서울은 또?” 하는 반응이 먼저 나와요. 왜냐면 그들은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도권 편중”이라는 단어를 뼈저리게 체감해왔으니까요.
지방은 이미 청년들이 떠난 지 오래고, 남은 건 텅 빈 상가, 멈춰선 버스, 조용한 시장뿐이에요. 그런데 이제 남아 있는 기업과 일자리마저 서울로 끌려간다면, 지방엔 뭐가 남을까요?
지방의 고민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이다
몇 년 전, 경북 구미는 꽤 큰 기대에 부풀었던 적이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새로운 반도체 생산라인을 세운다는 소식이 들리자, 지역 언론과 주민들 사이에 “혹시 구미가 유력 후보지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퍼졌죠. 실제로 구미시는 인프라도 갖추고 있고, 산업단지도 넓고, 인근에 대학도 있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용인이었습니다. 한 달도 안 돼서 결정이 났고, 이유는 “수도권에 인재와 협력 생태계가 더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구미 사람들은 실망을 넘어, 허탈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방이 아무리 준비를 해도 결국은 수도권으로 쏠리는 구조라면, 대체 뭘 더 준비해야 하냐는 회의감이 커졌습니다. 구미 한 자영업자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늘 기회가 오는 척하다가, 조용히 돌아서더라고요.”
지방 입장에서 기업 유치란 ‘경쟁’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입니다. 하이닉스처럼 대형 투자가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인구가 늘고, 학교가 유지되고, 마을이 버팁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기회’마저 수도권으로 다시 흘러간다면, 남는 건 또다시 침묵뿐입니다.
진짜 균형발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균형발전이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많이 쓰였고, 솔직히 좀 지겹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라는 뜻이기도 하겠죠. 지금 필요한 건, 예산을 늘리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신 지방에 살아도 서울처럼 일하고, 배울 수 있는 시스템. 서울에서 누리는 기회와 지방에서의 기회가 크게 다르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 예를 들어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 본사 중 일부가 지방으로 내려오고, 대학 연구소가 지역과 연계돼 실질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
그래야 지방 청년들도 더 이상 “떠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게 될 겁니다. 지방을 살릴 수 있는 건 결국, ‘서울을 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같이 키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죠.
한쪽만 빨라선, 함께 못 걷습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 그 말은 분명 한편으론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가 또다시 서울과 경기로만 흘러가 버린다면, 지방은 더는 기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어질지 모릅니다.
성장은 혼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같이 걸을 때, 나란히 갈 때, 진짜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요. 이번엔 제발, 다르길 바랍니다.
서울이 달려갈 동안, 지방도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함께 나아가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진심으로 오기를 바랍니다